번역   이   덕 옥

  

 

 엽문(葉問)2 시놉시스

중일전쟁 기간(1940년대) 중에 엽문(견자단)은 권법의 대가로서 중국인들의 존엄을 살리기 위해 일본 황군과 맞서 결국 쫒기는 신세가 된다. 전쟁이 끝나자 엽문은 고향인 불산(佛山)에서 생활이 어려워 1949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옮겨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한다.

타향인 홍콩 땅이지만 다행히 신문사에서 주필로 있는 친구 양근(오가년)의 도움을 받아 천대무관(天台武館) 개설해 영춘권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량(황효명)이란 청년이 서양권(권투)을 배운 사형들을 여러 명 데려와 엽문을 사부님을 모신다. 그로부터 엽문은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거둬들이게 된다.

혈기왕성한 황량은 사소한 감정으로 인해 홍권(洪拳)의 제자인 정위기(두우항)에게 도전을 하게 된다. 정위기는 패하자 승복하지 않고 부하들을 이끌고 황량을 어시장으로 납치한다. 이 사실을 안 엽문은 황량을 구하기 위해 어시장으로 달려간다. 이때 어시장의 실력자 황사부(홍금보)도 친구 비파(정칙사)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결국 두 사람은 맞닥뜨리고 홍사부는 엽문더러 향 한 자루가 타는 시간 내에 각 문파의 도전을 통과해야만 홍콩 무술계에서 발을 붙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엽문은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응한다. 그의 아내 장영성(능대림)은 내심 걱정이 되지만 남편의 뜻을 존중해 만류하지 않는다. 엽문은 다루(중국식 찻집)에서 <일주향(一柱香) 도전>을 받게 된다. 그는 각 문파의 고수들을 일일이 격파하고 마지막 관문에서 홍권의 대가인 홍사부가 직접 나선다.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 향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 홍사부는 엽문의 실력에 탄복해 결국 무관을 열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한다.

다음날 서양인 경사(경찰)가 홍사부를 찾아와 <서양권 권왕 쟁패전>을 주최해 줄 것을 종용한다. 그와 함께 온 용권풍은 서양권의 챔피언으로 근육질에 힘이 장사인데다가 안하무인으로 거만한 위인이다. 홍사부는 어쩔 수 없이 서양 경사의 청을 받아들인다.

한편 주광여(정가성)은 <일주향 무술시합>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 싣는다. 그는 홍권과 영춘권이 막상막하이기 때문에 홍사부가 엽문이 천대무관을 개설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했다. 양근은 주위 사람들의 압력에 굴복해 엽문더러 천대무관을 접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엽문은 홍콩에서 계속 영춘권을 전수하겠다고 고집한다. 공원에서 엽문과 제자들이 영춘권을 시연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다. 홍사부도 엽문의 결심에 존경을 표하며 <서양권왕 쟁패전>의 입장권을 주어 엽문과의 화해를 도모한다.

엽문은 주광요. 황량과 함께 서양권시합을 구경하러 간다. 비무대(比武台: 링)에서 용권풍이 실력을 발휘해 상대를 일일이 쓰러뜨리고 결국 권왕(拳王)의 타이틀을 차지한다. 정식 시합이 끝나자 정위기와 제자들이 흥을 돋기 위해 무대(링)에 올라 무술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용권풍은 중국 무술이 마치 어린애 장난 같다면서 무대 위로 올라 정위기 등을 멸시하며 희롱한다.

그에 화가 난 홍사부는 용권풍더러 당장 관중들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용권풍은 단호히 거절하고 오히려 홍사부에게 도전을 한다. 홍사부는 기꺼이 그의 도전을 받아들인다. 권왕은 시간이 흘러도 홍사부는 꺾지 못하자 광기가 발동한다. 홍사부는 차츰 수세에 몰리는데 동양무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굴복을 하지 않는다. 결국 용권풍의 악랄한 일격에 쓰러지고 만다. 주광요는 신문에다 경찰이 양인을 감싸고 동족을 멸시한다고 대서특필한다. 그 기사는 대중의 공분을 사게 되고 양인에 대한 항의가 빗발친다. 양인 경사는 민중들의 공분을 무마하기 위해 <화양권(華洋拳중국무술과 서양권) 시합>을 열겠다고 선포한다. 용권풍으로 하여금 그 시합에서 정식으로 중국무술을 꺾어버리라고 명한다. 기자회에서 엽문은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용권풍에게 도전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를 계기로 해서 홍콩에서 영춘권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고 제자들이 속속 몰려온다. 엽문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궁극적으로 영춘권은 홍콩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지까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56년 어느 날. 황량이 엽문의 무관으로 한 젊은이를 데려오는데 그가 바로 중국무술을 전 세계에 알려 국제적으로 명성이 혁혁한 이소룡이다.

 

영춘권

영춘권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청나라 말엽 남소림(南少林)에 몸담고 있던  五枚師太(여승)가 창시했다는 설이다. 오매사태가 하루는 하산하여 광동 불산진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두부장수를 만나게 된다. 마침 그의 아리따운 딸-영춘이 현지 건달들에게 희롱을 당해 상심하고 있던 터라, 오매는 자신의 무공 중에 여자가 배우기 적합한 것을 추려내 자위용으로 전수해 주었다. 영춘은 워낙 자질이 뛰어나 짧은 기한에 그 무술의 요점과 변화를 구사하는 오묘한 부분까지 파악해 새롭게 실용적인 권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그 권법을 바로 영춘권이다.

당시 영춘권은 여자들의 자기방어용으로 쓰였다. 그래서 다른 문파처럼 거칠고 강맹한 게 아니라 신법과 보법은 거의 이유제강(以柔制剛, 유중유강(柔中有剛), 여인들이 구사하기 유리하게 이뤄졌고. 동작 또한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라 복잡한 기교가 별로 없었다. 일종의 장중(莊重)하면서도 실용적인 권법이라 할 수가 있다. 그 후로 영춘이 양박구(梁博仇)에게 시집가 권법을 모두 남편에게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양박구는 영춘권을 황화보(黃華寶). 양이제(梁二娣)의 비술인 육점반곤법<六點半棍法>을 가미해. 곤봉이 영춘권을 익히는 사람들의 필수 병기 중에 하나가 되었다.

영춘권의 발상지인 불산, 불산지(佛山誌)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광서황제(1875~1908) 초년에 황화보 등은 영춘권을 양찬(梁贊?)에게 전수해준다. 양찬은 불산의 유명한 의원으로서 명성이 자자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했다. 양찬은 의술에 능하면서도 무예에 심취해 여러 무공을 익혔는데 그에 만족하지 않고 결국 영춘권을 다시 배우게 된다.

양찬은 영춘권이 법도. 용력. 신법 등에서 모두 상승(上乘: 최상급)무공임을 깨닫는다. 하여 열심히 탐구해 영춘권의  소념두(小念頭), 심교(尋橋), 표지(標指), 목인춘법(木人椿法), 육점반곤법. 팔참도법(八斬刀法) 등을 몸과 혼연일치가 되도록 거의 완벽하게 익혔다. 그리고 영춘권을 실전기술에 접목해 지역사회에서 권선징악 하는 데에도 응용해 중국 영남(嶺南)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영춘권왕>이란 영예도 얻는다. 그러나 무술보다 본업인 의학에 전념하느라 제자를 많이 거두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에게 진전을 전수받은 사람은 고작 자신의 두 아들 양춘, 양벽과 진화순(陳華順) 세 사람 뿐이다. 하여 영춘권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직접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 더욱 희귀하게 여겨졌다.

진화순은 순덕(順德) 진촌(陳村) 사람인데 조상대대로 불산에서 살아왔다. 그는 양찬이 경영하는 의원에 자주 들려 인연을 맺어 영춘권을 배우게 됐다. 양찬이 사후 영춘권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진화순은 아예 무관을 열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영춘권은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쌓아야 할 뿐 아니라. 제자에게 직접 일일이 전수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문하생을 많이 받을 수 없고, 배우는 학비도 비싸 당시 주로 부잣집 공자만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영춘권을 <귀공자권>이라고도 한다. 그런 까닭에 진화순이 36년 동안 영춘권을 가르쳤는데 제자는 고작 16명밖에 안 된다. 그중에는 오중소(吳仲素). 하한려(何漢侶). 뇌여제(雷汝濟). 자신의 아들 진여금(陳汝錦). 그리고 훗날 영춘권을 널리 계승발전시킨 마지막 제자 엽문이 있다.

엽문은 일곱 살 때 입문하여 당시 노년에 접어든 진화순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해 많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순이 사후 대사형인 오중소도 엽문을 각별이 아껴 열심히 가르치고 도와주었다. 엽문은 배운 지 3년 만에 모든 진전(眞傳)을 전수받았다. 그는 16 세 때 학업 때문에 홍콩으로 건너가는데 거기서 사숙이 되는 양벽(양찬의 아들)을 만나 다시 3년간 진수를 전수받는다. 당연히 결과가 일취월장! 나중에 엽문이 다시 불산으로 돌아가 무술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쓰자, 영춘권은 또다시 명성이 커진다. 헌데 마침 일본군의 침략이 닥치고 엽문은 그들과 맞서다가 결국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어 영춘권은 한때나마 정체기를 맞게 된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 엽문은 다시 홍콩으로 건너가 친구 이민의 도움으로 구룡(九龍)에다 무관을 열어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엽문은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양의 과학 지식, 철학을 권법에 응용해 영춘권을 보다 체계화 시켰다. 공격라인. 그 각도. 그리고 힘의 안배 및 심리적인 이해 등등을 권법에다 융화시켰다. 그는 곧이곧대로 권법의 일초일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의 자질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 가르치고, 하나를 배워 열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도 병행하여 학습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엽문의 독특한 지도 방법에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또한 실전을 통해 권법의 요점을 이해시켜 영춘권이 널리 알려지게 하는 데 공헌했다. 결과적으로 영춘권이 동남아를 비롯해 전세계에 알려져 그중에 이소룡같은 세계적인 스타도 키워냈다. 하여 세인들은 엽문을 영춘권의 일대종사라 하는데 이의가 없다.

영춘권은 여인들의 자신을 방어하는 무술에서 시작되어 실전 무술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그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작은 마을 불산에서 발상하여 전세계로 번져나갔고 중국무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엽문2줄거리와 영춘권.hwp

 

 
엽문 2 (2010) 네티즌별점9
Ip Man 2,葉問 2
홍콩 | 액션,무협,드라마  | 감독 : 엽위신  | 배우 : 견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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