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참사 현장.

실종자 다섯 명이 발생한 바로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날...

생의 두번째 죽음의 고비.

천우신조, 무조건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방송작가협회 월간지에서

기사 청탁을 받고 쓴 원문  "장어"를

줄여서 싣느라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빠졌기에

여기 원본을 소개합니다.

 

 

 

- 장어 -

웃기는 사람이다!

직업이 웃기는 사람이 아니면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말로 유모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면 호감이 간다. 요즘은 신랑감도 유모감각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세태다.

복잡다양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모는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불가결한 가교 역할이 되어준다. 또한 유모는 어색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활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설픈 유모는 실없는 소리가 되기 일쑤고 시쳇말로 분위기가 썰렁하게 만든다.

난 주로 실없는 얘길 자주하는 편에 속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 썰렁한 얘기나마 재미있는 척 들어주고. 예의상 웃어주니 하릴없을 때 가만히 돌이켜보면 참으로 고마운 녀석들이다. 술좌석에 자주 불러주는 것도 아마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구라를 좀 깐다는데 비중이 더 둔 듯싶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 일상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해거름에 술친구들이 오늘도 酒와 함께 하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동네 슈퍼에 모여들었다. 술은 언제나 묵시적 합의가 돼있는 쇠주.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막걸리 붐이 일기 전에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주(國民酒)임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주는 발효식품이라 몸에 좋다고. 집에서 뚱쳐온 김치와 가게에서 현찰주고 산 두부가 접시에 담겼고, 잘 삭힌 홍어회. 왕새우 소금구이, 얼큰하게 끓인 우럭탕이 그냥 입방아로만 도마 위에 올랐다.

당연히 스태미나에 좋다는 민물장어도 의례 도마 안주에서 빠지지 않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누군가 진짜 민물장어를 잡으러가자고 제의했다.

“가마떼기에다 진흙과 닭내장을 넣어 밧줄에 매달아 한강(양화대교 쪽)에 던져놓으면 자연산 장어를 허벌나게 잡을 수 있다니께”

“뭐라카노! 시골에 가서 눈 뒤집어 까고 찾아봐도 없는 가마떼기를 도회지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이고?”

갑론을박(甲論乙駁) 끝에 돌아오는 토요일 1박2일 예정으로 직접 장어잡이에 출정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9월 초순. 썩 좋은 날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나쁜 날씨도 아니었다. 언성 높여가며 팔뚝만한 것을 잡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자칭 꾼들도 전달 퍼마신 술탓인지 하나 둘 꽁무니를 빼고 결국 나랑 라도. 상도. 세 사람이 선발대로 먼저 출발하기로 합의를 봤다. 끝까지 못 가겠다고 발뺌하는 라도(동네 통장)를 회칙까지 꺼내 보여주면서 협박해 겨우겨우 합류시켰다. (註: 회칙 제16항. 통장은 총무가 관리한다) 난 모임의 총무다.

 통(統)자 돌림 칭호 중에 대통(統)령 말고 통(統)장밖에 없다며 늘 큰소리 떵떵 치던 라도도 명문화돼 있는 회칙 앞에선 찍소리 못하게 따를 수밖에. 나머지 장삼이사들은 오후에 뒤따라오겠다고 통사정해서 봐주기로 했다.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직 달려 군남면 낚시 가게에 들려 주낚이랑 미끼로 쓸 미꾸라지 백여 마리를 사고. 그 부근 슈퍼에서 삼겹살 세근도 구매했다.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뭐.. 그 까이 것..” 페트병 소주(**ml) 여섯 병을 사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막상 우리가 장어낚시 최적지로 점찍은 강가에 다다라 보니 초입엔 군인들의 탱크가 훈련 중이고. 포인트 명당자리까지 진입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나있는 길이 없어 승용차로 갈대숲. 잡목덩굴. 자갈밭을 헤치고 물웅덩이를 여러 군데 건너야만 했다.

육안으로 가름하기에도 아슬아슬한 깊이의 웅덩이를 만나 건널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차가 물속에 잠기면 잽싸게 몸만 빠져나오면 되지!”하고 입방아를 위로삼아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얼추 3~40분 걸려 깊숙이 자리한 호젓한 강가에 진을 치게 되었다.

해떨어지기 전에 주낚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소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베이스캠프에서 약 백여 미터 떨어진 물살이 비교적 센 호선강만(弧線江灣) 쪽으로 이동해갔다.

두 사람은 낚시 바늘 백 개가 가지런히 꽂혀있는 둥그런 원통(圓筒)에서 바늘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풀어 일일이 미꾸라지를 꿰면, 나머지 한 사람 선봉(先鋒)은 낚싯줄 머리를 잡아끌고 강만(江灣)을 따라 배꼽에서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주낚을 놓는다. 뭐. 전문용어로 투승(投繩)이라고 한대나!

물론 줄 중간중간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묶어 낚싯바늘을 강저(江底)로 가라앉혀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는 테크닉도 발휘한다.

투승 작업이 끝나면 줄에 페트병을 묶어 장소를 표시하고 하룻밤을 기다려 새벽녘에 줄을 끌어올려(揚繩) 수확물(장어)을 맛있게 구워먹으면 된다.

이어서 낚시 못지않게 중요한 二部show 술판이 벌어지고, 지글지글 삼겹살에 목꺾기 운동을 시작할 즈음 어린애들을 포함한 일행이 승용차 두 대에 분승해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자갈밭에서 약 십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제법 넓은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술판이 무르익자 애들은 긴 그물을 강에 드리우고 喜喜樂樂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우리도 모래둔덕에다 릴을 펼쳤다. 그리고 애들이 잡은 피라미를 “아따! 월척이구먼!”하고 놀려주기도 했다.

우린 약속했던 2진이 오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온다고 해도 한밤중에 우리가 있는 위치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암튼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려던 계획을 접고 그냥 셋이 차 안에서 대충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낮과 달리 밤기운이 차가워 강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자정 2시 넘도록 술을 마셨다. 맞은편 텐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조용했다.

상도와 난 차 뒷좌석에 옷가지를 덮고 먼저 자자, 모닥불을 쬐며 졸던 라도는 뒤늦게 차 앞좌석에 똬리를 틀었다고 한다.

근디! “행님! 클났어야! 차 밑에 물이 찰랑찰랑한디! 이게 워찌 된겨?!” 라도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스스 깨어난 게 그로부터 약 두 시간 뒤.

후다닥 차에서 뛰어내려보니 미처 치우지 못하고 주위에 너부러져 있던 바나. 코펠. 낚싯대 등이 물위에 둥둥떠있는 게 아니가! 희미한 달빛아래 타다 남은 모닥불은 연기가 아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아무리 둘러봐도 비가 나린 흔적이 없는데, 귀신이 곡하고 참말 환장할 노릇이다.

허겁지겁 코펠이랑 바나 따위를 주워 차에 실자. 차주인 상도가 “얼른 차에 타!”하고 소릴 질러 반사적으로 차에 탔지만 부릉부릉! “시동이 안 걸려! 안 걸려!” 사실 시동이 걸려도 달리 갈 길이 없었다. 다시 차에서 내려왔을 땐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맞은편 텐트에서도 사람들이 나오고, 주로 40대인 그들은 모래둔덕에서 우왕좌왕. 다들 119에 구조를 청하는 전화를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뭐야! 이건 분명 어딘가 둑이 터진 거야!”

발목을 잠기던 물이 금방 무릎까지 차올랐다.

오던 길에 실없이 던졌던 말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차는 물속에 잠겨도 몸은 빠져나가야지!”

어둠속에서 보니 급물살이 곤두서서 밀려오는 느낌이다.

“야! 일단 튀고 보자!”

차 위치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야산까지는 약 십 미터. 그 와중에서도 지갑과 휴대폰이 들어있는 배낭을 꺼내 둘러매고 모래둔덕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피해요! 빨리 피해!!”

상도와 난 허겁지겁 급물살을 헤치며 뒤뚱뒤뚱 비칠비칠 간신히 야산 쪽으로 도망쳤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헌데 라도가 보이지 않는다.

“통장이 안 보여!”

내가 소리치자 야산 쪽에서 라도의 고함이 들려온다.

“나 여깄어! 여기!”

다행이다. 시골 함평에서 자라 일찍 단신홀몸으로 상경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역시 실전에 강했다.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되는 야산 끝자락에 발을 올려놓을 쯤에 물은 이미 가슴까지 넘실댔다. 강물은 너무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야산에 올라 숨돌릴 틈도 없이 뒤돌아보니 우리가 타고 온 스텔라 승용차는 물속에 잠겨 지붕밖에 보이지 않고, 모래둔덕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어린애를 포함해 다섯 명이 희생됐다. 삼가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한발만 늦었더라도.. 절체절명 위험한 순간이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휴대폰은 물에 젖어 남의 휴대폰을 빌려 집에다 전화를 하려는데,(아침뉴스에 나오면 걱정할까봐..) 집전화번호. 와이프 전화. 딸 전화번호.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모양.

임진강 물난리. 재작년 9월 6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동네에선 살아돌아온 우릴 위로해준답시고 막걸리를 사면서 뭐..동내에 들어올 15억(보상금)을 놓쳤다느니 조(주)동아리를 까길래. 

난리가 일어난 지 며칠 후. 우린 연천군청을 찾아가 피해사실을 소상하게 밝히고 따졌다.

“대피경고 미작동 등등... 아무튼 이번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의 책임입니다.”

<수자원 임진강건설사업단>의 소재지까지 아주 친절하게? 일러준 군청직원의 도움으로 수자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청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쳐 겨우겨우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으니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다. 은근히 불화가 났다.

“그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우리 세 사람, 일인당 일억만 주십시오.”

“네?”

“보도를 보니 희생자 일인당 5억을 주기로 했다는데”

“그건..”

“우리가 만약 그 자리에서 희생자 5인과 운명을 함께 했다면, 5억을 줘야 하는데 악착같이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1억이면 싸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일인당 4억, 3*4= 12억이나 득 인데!.”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당황해 하는 관계자를 보니 약간은 속이 풀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술로 끓는 속을 확 풀어버렸다.

어쩌면 아직도 주낚에 걸려있을 왕장어를 확인하러 가야 쓰갓는디..영 엄두가 안 나는구먼!! ^^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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