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동아시아방송작가컨퍼런스 <아시아의 사랑>

               2008.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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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열리는 동아시아방송작가 컨퍼런스!

  한국, 중국에 이어 세번째 개최지는 일본. 예년과는 달리 이번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상해 외에도 필리핀, 태국, 베트남의 방송작가들이 참가해 나흘 동안 토론의 열기를 더욱 달구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작가들이 참가한 만큼 의견교환,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선 통역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그런데 각 지역을 대표해 중화권에서 참가한 작가들은 서로 언어가 통해 빨리 친숙해지고 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드라마를 통해 동아시아를 한 울타리로 묶는 축제와 토론의 장(場). 시작부터 나가사키(長崎)의 날씨만큼 뜨거웠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제작한 영상물을 접하는 경우,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호기심, 문화적인 감정과 생활방식, 가치관에 대한 차이점 때문에 끌림이 생겨 결국 그것이 공동관심사가 되고 하나의 쟁점이 형성된다. 이전에 서양에서 만든 작품들이 동아시아로 들어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면서 파생하는 섬세한 감정변화. 서로 다른 극중 개개인의 성격, 그리고 어떤 유사한 상황에 봉착되었을 때, 사안을 처리하는 방법의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외래문화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국경을 초월해 한중일 3국이 접하는 동아시아 드라마는 그와 양상이 좀 다르다.

  이번에 금혼(金婚)이란 작품을 갖고 컨퍼런스에 참가한 중국 북경 쪽의 정샤오룽(鄭曉龍) 작가의 말을 빌리면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과 일본 드라마를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동아시아권의 중국, 일본은 자고로 한국하고는 역사와 문화, 근린(近隣)의 지리적인 여건,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아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당연히 한중일 3국은 서로 차별되면서도 독특한 친화력을 갖고 있다. 추구하는 것과 향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일치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똑같이 동아시아문화권에 속해 있어 아주 유사한 생활방식이 만들어져 왔다.

  <금혼식>은 부부의 연을 맺은 남녀가 50년 동안 함께 쌓아온 애환의 역사, 그 결정체다. 단순히 숫자적으로 놓고 볼 때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절반이지만 금혼을 함께 맞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샤오룽 작가는 불확실성시대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금혼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사치(奢侈)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자식과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헌신하는 아내, 그리고 매력적인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 주인공- 퉁즈. 그는 생물학적 감성(感性)과 윤리에 뿌리를 둔 이성(理性) 사이에서 배회하지만 그 갈림길에서 일탈하지 않고 가정으로 돌아감으로서 훗날 금혼을 맞이하는 감격을 누린다.

  <금혼>은 1956년서부터 시작해 1년 단위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모두 50년, 50회로 방영된 작품으로 중국에서는 최고 연출상, 남녀 주연상, 최고 드라마상, 모두 네 개의 큰 상을 휩쓴 대단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극중 퉁즈와 윈리 부부가 살아온 50년 동안, 중국은 문화혁명을 비롯해 천안문 사건, 죽의 장막을 서서히 걷기 시작한 개방의 물결 등등 많은 격동(激動)의 순간들을 겪는데, 그 처절했던 시대적 배경, 사회적 문제를 묘사하는데 혹시 당국의 규제가 없었냐고 사석에서 작가에게 대놓고 묻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특별한 규제는 없었고 주인공 가정과 가족 관계를 통해 전부 용화(熔化)시켜 표현했다고 말하는 게 아무래도 좀 거시기해 보였다.  

  금혼이란 작품을 통해서도 알듯이 대남자주의(大男子主義)라고 하는 남성 중심의 가정과 사랑 이야기는 중화권 북부지방(北方)의 특징이다. 남부지방 상해 혹은 대만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같은 중국인끼리도 때로는 이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상해에서 온 왕리핑 작가의 작품 “누가 내 마음을 알까?” (誰懂我的心), 대만 작가의 공주소매(公主小妹)와는 물론 시대적 배경이 다르지만 진취적인 여성상. 여성 중심적인 스토리와는 대조가 된다.    

   금혼, 이 드라마에는 동양적인 배려, 관용정신과 유미정치(唯美精緻)한 정서가 녹아있다. 그리고 동양의 윤리가치관이 배어나온다. 예를 들어 부모님에 대한 봉양과 공경을 당연시하는 효심. 부부간에 의리를 중시하고, 성실하고 진취적인 생활자세, 가족을 아끼는 마음, 주위사람들과의 친화력, 그러한 인간미와 사회성은 중화권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충분하다.

  참고로 중국의 TV드라마 주(主) 시청자는 중노년층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한 “윤리 교과서”로 불리는 <금혼>이 방영된 후로 중국에서 이혼율이 낮아졌고, 자식들이 부모를 위한 금혼식(金婚式) 붐이 일어, 북경에선 그 행사를 맡아해 주는 <금혼식 이벤트 회사>가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중국에서 한류의 붐을 일으킨 작품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 집 남자들>. <보고 또 보고>, 많은 작품이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고, 정샤우룽 작가는 금혼도 그런 범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권은 상식, 풍습, 윤리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로 많은 공통된 문화특질을 지니고 있다.

  상해의 왕판(王帆) 작가는 그러한 여러 가지 공통점과 유사점이 중국 시청자가 한국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 별로 낯설지 않고 마치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로 여겨진다고. 때로는 극중 줄거리. 인간관계, 인물 설정, 모두 중국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른 게 있다면 한국인들의 주거환경, 여인들의 화장과 의상, 그리고 행동거지, 표현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자오윈잉(趙蘊韻) 작가는 한 숱 더 떠서 중국은 20세기에 들어서 근 백 년 동안 거듭된 脫古入現(옛것에서 탈피해 새로운 것을 추구함)의 격랑을 거치면서 부단히 반전통(反傳統)의 기치를 흔들어댔고, 그로 말미암아 중화권의 젊은 남녀들은 이젠 서구적인 색채를 띤 자기중심의 사랑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일탈도 비일비재해, 일상생활에 있어 유교사상의 척도가 상당히 퇴색되어 거의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다소 개탄스러워했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 드라마를 통해 표현된 세정인륜(世情人倫) 즉 정문화(情文化),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성과 그 지속성, 그러한 것들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처리한 연출수법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중국은 언어학적으로 존댓말과 반말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망년지교(忘年之交) 경우도 있다. 남녀관계, 인간관계도 상하 수직보다도 주로 수평관계를 유지한다. 대만에서 온 치시린((齊錫麟) 작가는 중국인에게 있어 한국 드라마에서 나타난 장유유서(長幼有序), 효친사상, 부부간의 윤리의식. 자식들의 책임 도리(道理) 등등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고. 친근하면서도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문화현실 속에서 그러한 것들은 어쩌면 이제 체험하기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기억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정서의 뿌리이고 본받아야 할 문화인소(文化因素)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지긋한 중국의 자이쥔제(翟俊杰) 작가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중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어떤 깨우침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 옛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잃어버린 전통문화, 윤리도덕, 전통생활방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산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전통도덕의 중요성이 소홀시 되고 있으며 생활이 갈수록 실리적, 업무적으로 변하는 이 마당에 한국 드라마가 추구하는 진선미(眞善美), 표현하고자 하는 인류의 윤리도덕은 모두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치켜세운다. 그것만으로도 중국인들에게 잠재돼 있는 바람직한 문화기억력을 환기시킬 수 있는 커다란 계기와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중국 드라마는 물론 많은 장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대부분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샤우룽 작가는 금혼을 통해 서민적인 시각에서 작품을 썼다고 강조한다. 개방의 물결이 일기 이전 중국 드라마는 사회성이 너무 많이 깔려있고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고 사회에 대한 인식도가 미흡한 젊은층에게는 괴리감이 생겨 별로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자우쥔제 선생의 말을 빌리면, 그와 반대로 한국 드라마는 보통사람의 시각과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각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줄거리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잡다한 일들로 구성돼 있고. 중국과는 달리 어떤 특수계층이나 걸출한 인물이 아닌 평범한 “소인물(小人物)” 즉 일반서민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의지, 노력, 상향적인 테마를 다루어서 호감이 간다고 한다.

  사실 요즘 사랑을 다루는 중국 드라마나 한국 연속극은 극중 주인공이 반드시 미녀 혹은 잘생긴 꽃미남이 아니고, 완벽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모두 나름대로 사랑스럽고 친근감이 가는 점이 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잠자고, 서로 다투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소박한 생활, 잡다한 사건들은 시청자들에게 더 친근감을 줄 수가 있지 않을까.

  왕판 작가는 젊은 여성인데 사랑을 테마로 한 작품을 많이 써왔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의 “왕팬”이다. 한국 작품은 스토리가 진솔하고 자연스러워 이방인인 자신이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각본이 건전해 가족끼리 한자리에 모여 시청하는데 무리나 거부감이 없다며 환하게 웃는다. 중국 가정에서도 가족이 함께 TV를 시청하는 게 흔한 일상인데. 한국 드라마가 딱이란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작가들은 단지 이번 컨퍼런스에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것 같다. 그들의 나름대로 개성있는 작품은 아주 짤막하게(15분) 소개됐다.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 일본 작가 오카다 요시카즈(岡田惠和)의 <사랑의 노래>, 한국 작가 최순식 님의 <불량커풀>은 모두 호평을 받았다.

  제4회 개최지는 서울이라고 한다.

  이젠 방송작가들만의 한마당이 아니라,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로 향하는, 미디어 시장을 넓히고 넓히기 위해 제작에 관여하는 분들도 많이많이 참가할 거라고 하신다.

  내년을 기약하면서 컨퍼런스를 폐막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웬 놈의 바람이 그렇게 미친 듯이 불어대는지 술 마시기엔 딱 좋은 밤이었다. 

  다행히 귀국하는 이튼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방송작가'  월간지 기고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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