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7/ 중국 上海에 갔다가 아내 마리아 도미니카, 딸 로사와 함께 물어물어 베드로聖堂을 찿아가서 미사드리고 왔슴.

 

 

 

본당 레지오에서 교통봉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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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30

명동성당에서

염수정교구장님 집전 미사드리다.

바로크음악 연주회 봉사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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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일

김정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영명축일!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동영상 만들었습니다.

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서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시는

신부님을 뵈며

낮은 곳으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신부님~!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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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초청

판문점 ᆞ 제3땅굴 시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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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소식지 2000년 6월호 통권 115호  (0) 2009.07.26

 

임진강  참사 현장.

실종자 다섯 명이 발생한 바로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날...

생의 두번째 죽음의 고비.

천우신조, 무조건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방송작가협회 월간지에서

기사 청탁을 받고 쓴 원문  "장어"를

줄여서 싣느라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빠졌기에

여기 원본을 소개합니다.

 

 

 

- 장어 -

웃기는 사람이다!

직업이 웃기는 사람이 아니면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말로 유모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면 호감이 간다. 요즘은 신랑감도 유모감각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세태다.

복잡다양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모는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불가결한 가교 역할이 되어준다. 또한 유모는 어색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활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설픈 유모는 실없는 소리가 되기 일쑤고 시쳇말로 분위기가 썰렁하게 만든다.

난 주로 실없는 얘길 자주하는 편에 속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 썰렁한 얘기나마 재미있는 척 들어주고. 예의상 웃어주니 하릴없을 때 가만히 돌이켜보면 참으로 고마운 녀석들이다. 술좌석에 자주 불러주는 것도 아마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구라를 좀 깐다는데 비중이 더 둔 듯싶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 일상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해거름에 술친구들이 오늘도 酒와 함께 하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동네 슈퍼에 모여들었다. 술은 언제나 묵시적 합의가 돼있는 쇠주.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막걸리 붐이 일기 전에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주(國民酒)임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주는 발효식품이라 몸에 좋다고. 집에서 뚱쳐온 김치와 가게에서 현찰주고 산 두부가 접시에 담겼고, 잘 삭힌 홍어회. 왕새우 소금구이, 얼큰하게 끓인 우럭탕이 그냥 입방아로만 도마 위에 올랐다.

당연히 스태미나에 좋다는 민물장어도 의례 도마 안주에서 빠지지 않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누군가 진짜 민물장어를 잡으러가자고 제의했다.

“가마떼기에다 진흙과 닭내장을 넣어 밧줄에 매달아 한강(양화대교 쪽)에 던져놓으면 자연산 장어를 허벌나게 잡을 수 있다니께”

“뭐라카노! 시골에 가서 눈 뒤집어 까고 찾아봐도 없는 가마떼기를 도회지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이고?”

갑론을박(甲論乙駁) 끝에 돌아오는 토요일 1박2일 예정으로 직접 장어잡이에 출정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9월 초순. 썩 좋은 날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나쁜 날씨도 아니었다. 언성 높여가며 팔뚝만한 것을 잡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자칭 꾼들도 전달 퍼마신 술탓인지 하나 둘 꽁무니를 빼고 결국 나랑 라도. 상도. 세 사람이 선발대로 먼저 출발하기로 합의를 봤다. 끝까지 못 가겠다고 발뺌하는 라도(동네 통장)를 회칙까지 꺼내 보여주면서 협박해 겨우겨우 합류시켰다. (註: 회칙 제16항. 통장은 총무가 관리한다) 난 모임의 총무다.

 통(統)자 돌림 칭호 중에 대통(統)령 말고 통(統)장밖에 없다며 늘 큰소리 떵떵 치던 라도도 명문화돼 있는 회칙 앞에선 찍소리 못하게 따를 수밖에. 나머지 장삼이사들은 오후에 뒤따라오겠다고 통사정해서 봐주기로 했다.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직 달려 군남면 낚시 가게에 들려 주낚이랑 미끼로 쓸 미꾸라지 백여 마리를 사고. 그 부근 슈퍼에서 삼겹살 세근도 구매했다.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뭐.. 그 까이 것..” 페트병 소주(**ml) 여섯 병을 사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막상 우리가 장어낚시 최적지로 점찍은 강가에 다다라 보니 초입엔 군인들의 탱크가 훈련 중이고. 포인트 명당자리까지 진입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나있는 길이 없어 승용차로 갈대숲. 잡목덩굴. 자갈밭을 헤치고 물웅덩이를 여러 군데 건너야만 했다.

육안으로 가름하기에도 아슬아슬한 깊이의 웅덩이를 만나 건널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차가 물속에 잠기면 잽싸게 몸만 빠져나오면 되지!”하고 입방아를 위로삼아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얼추 3~40분 걸려 깊숙이 자리한 호젓한 강가에 진을 치게 되었다.

해떨어지기 전에 주낚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소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베이스캠프에서 약 백여 미터 떨어진 물살이 비교적 센 호선강만(弧線江灣) 쪽으로 이동해갔다.

두 사람은 낚시 바늘 백 개가 가지런히 꽂혀있는 둥그런 원통(圓筒)에서 바늘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풀어 일일이 미꾸라지를 꿰면, 나머지 한 사람 선봉(先鋒)은 낚싯줄 머리를 잡아끌고 강만(江灣)을 따라 배꼽에서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주낚을 놓는다. 뭐. 전문용어로 투승(投繩)이라고 한대나!

물론 줄 중간중간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묶어 낚싯바늘을 강저(江底)로 가라앉혀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는 테크닉도 발휘한다.

투승 작업이 끝나면 줄에 페트병을 묶어 장소를 표시하고 하룻밤을 기다려 새벽녘에 줄을 끌어올려(揚繩) 수확물(장어)을 맛있게 구워먹으면 된다.

이어서 낚시 못지않게 중요한 二部show 술판이 벌어지고, 지글지글 삼겹살에 목꺾기 운동을 시작할 즈음 어린애들을 포함한 일행이 승용차 두 대에 분승해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자갈밭에서 약 십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제법 넓은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술판이 무르익자 애들은 긴 그물을 강에 드리우고 喜喜樂樂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우리도 모래둔덕에다 릴을 펼쳤다. 그리고 애들이 잡은 피라미를 “아따! 월척이구먼!”하고 놀려주기도 했다.

우린 약속했던 2진이 오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온다고 해도 한밤중에 우리가 있는 위치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암튼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려던 계획을 접고 그냥 셋이 차 안에서 대충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낮과 달리 밤기운이 차가워 강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자정 2시 넘도록 술을 마셨다. 맞은편 텐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조용했다.

상도와 난 차 뒷좌석에 옷가지를 덮고 먼저 자자, 모닥불을 쬐며 졸던 라도는 뒤늦게 차 앞좌석에 똬리를 틀었다고 한다.

근디! “행님! 클났어야! 차 밑에 물이 찰랑찰랑한디! 이게 워찌 된겨?!” 라도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스스 깨어난 게 그로부터 약 두 시간 뒤.

후다닥 차에서 뛰어내려보니 미처 치우지 못하고 주위에 너부러져 있던 바나. 코펠. 낚싯대 등이 물위에 둥둥떠있는 게 아니가! 희미한 달빛아래 타다 남은 모닥불은 연기가 아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아무리 둘러봐도 비가 나린 흔적이 없는데, 귀신이 곡하고 참말 환장할 노릇이다.

허겁지겁 코펠이랑 바나 따위를 주워 차에 실자. 차주인 상도가 “얼른 차에 타!”하고 소릴 질러 반사적으로 차에 탔지만 부릉부릉! “시동이 안 걸려! 안 걸려!” 사실 시동이 걸려도 달리 갈 길이 없었다. 다시 차에서 내려왔을 땐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맞은편 텐트에서도 사람들이 나오고, 주로 40대인 그들은 모래둔덕에서 우왕좌왕. 다들 119에 구조를 청하는 전화를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뭐야! 이건 분명 어딘가 둑이 터진 거야!”

발목을 잠기던 물이 금방 무릎까지 차올랐다.

오던 길에 실없이 던졌던 말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차는 물속에 잠겨도 몸은 빠져나가야지!”

어둠속에서 보니 급물살이 곤두서서 밀려오는 느낌이다.

“야! 일단 튀고 보자!”

차 위치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야산까지는 약 십 미터. 그 와중에서도 지갑과 휴대폰이 들어있는 배낭을 꺼내 둘러매고 모래둔덕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피해요! 빨리 피해!!”

상도와 난 허겁지겁 급물살을 헤치며 뒤뚱뒤뚱 비칠비칠 간신히 야산 쪽으로 도망쳤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헌데 라도가 보이지 않는다.

“통장이 안 보여!”

내가 소리치자 야산 쪽에서 라도의 고함이 들려온다.

“나 여깄어! 여기!”

다행이다. 시골 함평에서 자라 일찍 단신홀몸으로 상경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역시 실전에 강했다.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되는 야산 끝자락에 발을 올려놓을 쯤에 물은 이미 가슴까지 넘실댔다. 강물은 너무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야산에 올라 숨돌릴 틈도 없이 뒤돌아보니 우리가 타고 온 스텔라 승용차는 물속에 잠겨 지붕밖에 보이지 않고, 모래둔덕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어린애를 포함해 다섯 명이 희생됐다. 삼가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한발만 늦었더라도.. 절체절명 위험한 순간이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휴대폰은 물에 젖어 남의 휴대폰을 빌려 집에다 전화를 하려는데,(아침뉴스에 나오면 걱정할까봐..) 집전화번호. 와이프 전화. 딸 전화번호.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모양.

임진강 물난리. 재작년 9월 6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동네에선 살아돌아온 우릴 위로해준답시고 막걸리를 사면서 뭐..동내에 들어올 15억(보상금)을 놓쳤다느니 조(주)동아리를 까길래. 

난리가 일어난 지 며칠 후. 우린 연천군청을 찾아가 피해사실을 소상하게 밝히고 따졌다.

“대피경고 미작동 등등... 아무튼 이번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의 책임입니다.”

<수자원 임진강건설사업단>의 소재지까지 아주 친절하게? 일러준 군청직원의 도움으로 수자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청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쳐 겨우겨우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으니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다. 은근히 불화가 났다.

“그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우리 세 사람, 일인당 일억만 주십시오.”

“네?”

“보도를 보니 희생자 일인당 5억을 주기로 했다는데”

“그건..”

“우리가 만약 그 자리에서 희생자 5인과 운명을 함께 했다면, 5억을 줘야 하는데 악착같이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1억이면 싸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일인당 4억, 3*4= 12억이나 득 인데!.”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당황해 하는 관계자를 보니 약간은 속이 풀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술로 끓는 속을 확 풀어버렸다.

어쩌면 아직도 주낚에 걸려있을 왕장어를 확인하러 가야 쓰갓는디..영 엄두가 안 나는구먼!! ^^

 

ㅎㅎㅎ ~ 

 

*** KBS 2TV 생방송 아침을 달린다 목요 초대석 1995년 6월 8일

   "판관 포청천"의 숨은 이야기꾼 중국어 번역가 이덕옥씨

 

 

 

 

 

 

 

 

 

 

 

 

                            직업의 세계

 

   영상번역 작가    이 덕옥

   
줄리아 로버츠, 톰 행크스, 브레드 피트, 금성무 등 언어가 다른 세계 영화스타들이 스크린 속 매력을 간파하고 팬이 되어 열광할 수 있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영상번역작가. 외국에서 수입된 영화에 우리말을 입히는 일을 하는 이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관객들의 소중한 귀가 되어준다.
문건(paper)을 앞에 두고 번역하는 일반 번역가와 달리, '영상(화면)'을 보면서 번역하는 영상번역의 종류엔 자막번역과 더빙번역이 있다.
자막번역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비디오물을 번역할 때 쓰이는데, 번역되 대사를 화면 자막을 통해 내보내기 때문에 번역 자체를 자막 규격에 맞췌야 한다는 형식적인 제한이 있다.

비디오물의 경우는 띄어쓰기를 포함해 가로로 16자씩 2줄, 총 32자가 가능하고 영화는 세로 7자씩 3줄, 모두 21자가 허용된다고.
더빙번역은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번역한 것, 대사를 성우의 더빙을 통해 내보내기 때문에 외국배우의 입모양에 대사를 맞취야 한는 제약이 따른다.

[의천도룡기]를 비롯 지금 까지 30년간 1천여 편 이상의 비디오물을 번역했고, 몇년 전엔 TV 인기드라마 [판관 포청천]을 탄생시켜 주목을 끌기도 했던 중국어 영상번역작가 이 덕옥 씨(세방영상 대표.한국 방송작가협회 회원.51세)는 "무협영화에는 고사성어가 많이 나오는데, 중국어로는 몇 마디 말이 한국어로 속뜻을 풀면 길어 집니다. 그것을 배우의 연기와 동작, 입놀림에 맞추려니 쉬운 일이 아니죠"라고 설명한다.

영상번역은 외국어 대사를 직접 들으면서 우리말로 바꾸되,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한국어를 찾는 게 핵심. "소설번역등은 어려운 단어 구사도 가능하지만 영상번역에선 여러 계층의 관객, 그야말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피해야 하고, 코믹물의 경우 국가마다 정서가 틀려 그쪽 나라에서 요절복통하는 내용을 우리나라 말로 그대로 직역하면 썰렁할 때가 있죠, 그것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도록 알맞은 말을 뽑아내야 합니다"고 말하는 이덕옥 씨는

"영상번역작가가 되기 위해선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글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외국어는 간혹 그뜻을 파악하기 힘들 때 자료를 뒤진다거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본다거나 하여 얼마든지 '커닝'이 가능하지만 문장력은 자기 스스로 키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여기에 외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풍부한 상식이 요구되죠"라고 지적한다.

영상번역작가는 극장영화에서 부터 비디오, TV의 외화번역, 다큐멘터리 등 각종 기획물 및 광고번역에 이르기까지 활동분야가 다양하다. 그러나 업무의 성격상 방송국이나 프로덕션에 전속으로 계약해 월급을 받는 구조로 업무가 이루어지기는 힘들고 하나의 센터를 중심으로 그 주면에 프리랜서들이 포진하고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때 그 센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한국방송작가협회 산하 번역분과(TV영화,비디오의 경우). 초보자라면 우선 이들 센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일을 배워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영상번역작가의 수입은 철저하게 경력과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보통 비디오물은 한편에 20~25만원, 극장영화는 편당 50~80만원이고, TV영화의 경우는 10분당 8~10만원 선.
몇몇 방송국 아카데미나 대학 사회 교육원에 대학 사회교육원에 외하번역가 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영상번역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능통한 외국어 실력을 쌓는 것이 급선무. 그래서인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영상번역작가 중에는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영상번역작가로 입문하는 길은 번역회사의 견습작가로 출발하는 방법, 유명작가의 문화생으로 들어가는 방법, 교육기관이나 영화사,프로덕션등의 주변 인맥을 통해 일을 받는 방법이 있고 한국영상번역가협회 주관하에 1년에 4번 치러지는 '영상번역능력 인증시험'에 도전하는 방법도 있다. 비정기적으로 프리랜서를 모집하기도 하므로 공고문을 놓치지 말 것.
  • 문의: 한국방송작가협회 782-1696
    한국영상번역가협회 782-8532
    취재/ 여순희(muse1024@hitel.net)

 


    

 

       

 

 

 

 

 

 

"세방번역 중국어 전문 영상번역가 이덕옥

 

 

자연스런 우리말 구사와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홍콩영화와 무협지를 제일 먼저, 그것도 나오는 족족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다는 독특한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덕옥(48)씨. 국내상영 중국어로 된 영화중 이덕옥 씨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영화는 한편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어 전문 영상번역가로서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있다
.

"영상 번역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외국어보다 우리말 구사 능력이 더 많이 요구됩니다. 더군다나 비디오의 경우 1줄에 12자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등 길이제한이 있어 그 길이에 맞추어 함축된 언어를 선택하고 대사를 매끄럽게 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지요".

현재는 매주마다 시청자들을 중국 무협영화에 푹 빠져들게 하는 KBS의 [포청천]과 SBS-TV[측천무후]의 중국어를 맛깔난 우리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속속 도전해 오기를 기대한다고.

최근 케이블TV방송이 활성화되면서 그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어 이 직업을 선망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 이들에게 그는 "외국어만을 잘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상식과 오랜 경험을 통한 테크닉 구사가 요구되는 작업이므로 꾸준한 자기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도 빠짐없이 꼼꼼이 읽어 살아있는 어휘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보통 작업은 자신의 작업실, 세방번역에서 하는데 90분짜리 비디오의 경우 하루에 한편 정도를, TV방송사의 경우 한프로에 80~100만원 정도, 비디오는 20~25만원, 영화는 50만원선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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