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참사 현장.

실종자 다섯 명이 발생한 바로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날...

생의 두번째 죽음의 고비.

천우신조, 무조건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다.

                                                                                              

 

 

 

 

 

방송작가협회 월간지에서

기사 청탁을 받고 쓴 원문  "장어"를

줄여서 싣느라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빠졌기에

여기 원본을 소개합니다.

 

 

 

- 장어 -

웃기는 사람이다!

직업이 웃기는 사람이 아니면 별로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말로 유모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하면 호감이 간다. 요즘은 신랑감도 유모감각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세태다.

복잡다양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모는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불가결한 가교 역할이 되어준다. 또한 유모는 어색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해소해주는 활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설픈 유모는 실없는 소리가 되기 일쑤고 시쳇말로 분위기가 썰렁하게 만든다.

난 주로 실없는 얘길 자주하는 편에 속한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 썰렁한 얘기나마 재미있는 척 들어주고. 예의상 웃어주니 하릴없을 때 가만히 돌이켜보면 참으로 고마운 녀석들이다. 술좌석에 자주 불러주는 것도 아마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구라를 좀 깐다는데 비중이 더 둔 듯싶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 일상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해거름에 술친구들이 오늘도 酒와 함께 하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동네 슈퍼에 모여들었다. 술은 언제나 묵시적 합의가 돼있는 쇠주.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막걸리 붐이 일기 전에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주(國民酒)임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주는 발효식품이라 몸에 좋다고. 집에서 뚱쳐온 김치와 가게에서 현찰주고 산 두부가 접시에 담겼고, 잘 삭힌 홍어회. 왕새우 소금구이, 얼큰하게 끓인 우럭탕이 그냥 입방아로만 도마 위에 올랐다.

당연히 스태미나에 좋다는 민물장어도 의례 도마 안주에서 빠지지 않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누군가 진짜 민물장어를 잡으러가자고 제의했다.

“가마떼기에다 진흙과 닭내장을 넣어 밧줄에 매달아 한강(양화대교 쪽)에 던져놓으면 자연산 장어를 허벌나게 잡을 수 있다니께”

“뭐라카노! 시골에 가서 눈 뒤집어 까고 찾아봐도 없는 가마떼기를 도회지 어디 가서 구한단 말이고?”

갑론을박(甲論乙駁) 끝에 돌아오는 토요일 1박2일 예정으로 직접 장어잡이에 출정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9월 초순. 썩 좋은 날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나쁜 날씨도 아니었다. 언성 높여가며 팔뚝만한 것을 잡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자칭 꾼들도 전달 퍼마신 술탓인지 하나 둘 꽁무니를 빼고 결국 나랑 라도. 상도. 세 사람이 선발대로 먼저 출발하기로 합의를 봤다. 끝까지 못 가겠다고 발뺌하는 라도(동네 통장)를 회칙까지 꺼내 보여주면서 협박해 겨우겨우 합류시켰다. (註: 회칙 제16항. 통장은 총무가 관리한다) 난 모임의 총무다.

 통(統)자 돌림 칭호 중에 대통(統)령 말고 통(統)장밖에 없다며 늘 큰소리 떵떵 치던 라도도 명문화돼 있는 회칙 앞에선 찍소리 못하게 따를 수밖에. 나머지 장삼이사들은 오후에 뒤따라오겠다고 통사정해서 봐주기로 했다.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직 달려 군남면 낚시 가게에 들려 주낚이랑 미끼로 쓸 미꾸라지 백여 마리를 사고. 그 부근 슈퍼에서 삼겹살 세근도 구매했다.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뭐.. 그 까이 것..” 페트병 소주(**ml) 여섯 병을 사는 것도 절대 잊지 않았다.

막상 우리가 장어낚시 최적지로 점찍은 강가에 다다라 보니 초입엔 군인들의 탱크가 훈련 중이고. 포인트 명당자리까지 진입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다. 나있는 길이 없어 승용차로 갈대숲. 잡목덩굴. 자갈밭을 헤치고 물웅덩이를 여러 군데 건너야만 했다.

육안으로 가름하기에도 아슬아슬한 깊이의 웅덩이를 만나 건널까 말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차가 물속에 잠기면 잽싸게 몸만 빠져나오면 되지!”하고 입방아를 위로삼아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얼추 3~40분 걸려 깊숙이 자리한 호젓한 강가에 진을 치게 되었다.

해떨어지기 전에 주낚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소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베이스캠프에서 약 백여 미터 떨어진 물살이 비교적 센 호선강만(弧線江灣) 쪽으로 이동해갔다.

두 사람은 낚시 바늘 백 개가 가지런히 꽂혀있는 둥그런 원통(圓筒)에서 바늘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풀어 일일이 미꾸라지를 꿰면, 나머지 한 사람 선봉(先鋒)은 낚싯줄 머리를 잡아끌고 강만(江灣)을 따라 배꼽에서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주낚을 놓는다. 뭐. 전문용어로 투승(投繩)이라고 한대나!

물론 줄 중간중간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묶어 낚싯바늘을 강저(江底)로 가라앉혀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게 하는 테크닉도 발휘한다.

투승 작업이 끝나면 줄에 페트병을 묶어 장소를 표시하고 하룻밤을 기다려 새벽녘에 줄을 끌어올려(揚繩) 수확물(장어)을 맛있게 구워먹으면 된다.

이어서 낚시 못지않게 중요한 二部show 술판이 벌어지고, 지글지글 삼겹살에 목꺾기 운동을 시작할 즈음 어린애들을 포함한 일행이 승용차 두 대에 분승해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자갈밭에서 약 십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제법 넓은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술판이 무르익자 애들은 긴 그물을 강에 드리우고 喜喜樂樂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우리도 모래둔덕에다 릴을 펼쳤다. 그리고 애들이 잡은 피라미를 “아따! 월척이구먼!”하고 놀려주기도 했다.

우린 약속했던 2진이 오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온다고 해도 한밤중에 우리가 있는 위치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암튼 모래둔덕에 텐트를 치려던 계획을 접고 그냥 셋이 차 안에서 대충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낮과 달리 밤기운이 차가워 강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자정 2시 넘도록 술을 마셨다. 맞은편 텐트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조용했다.

상도와 난 차 뒷좌석에 옷가지를 덮고 먼저 자자, 모닥불을 쬐며 졸던 라도는 뒤늦게 차 앞좌석에 똬리를 틀었다고 한다.

근디! “행님! 클났어야! 차 밑에 물이 찰랑찰랑한디! 이게 워찌 된겨?!” 라도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스스 깨어난 게 그로부터 약 두 시간 뒤.

후다닥 차에서 뛰어내려보니 미처 치우지 못하고 주위에 너부러져 있던 바나. 코펠. 낚싯대 등이 물위에 둥둥떠있는 게 아니가! 희미한 달빛아래 타다 남은 모닥불은 연기가 아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아무리 둘러봐도 비가 나린 흔적이 없는데, 귀신이 곡하고 참말 환장할 노릇이다.

허겁지겁 코펠이랑 바나 따위를 주워 차에 실자. 차주인 상도가 “얼른 차에 타!”하고 소릴 질러 반사적으로 차에 탔지만 부릉부릉! “시동이 안 걸려! 안 걸려!” 사실 시동이 걸려도 달리 갈 길이 없었다. 다시 차에서 내려왔을 땐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맞은편 텐트에서도 사람들이 나오고, 주로 40대인 그들은 모래둔덕에서 우왕좌왕. 다들 119에 구조를 청하는 전화를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뭐야! 이건 분명 어딘가 둑이 터진 거야!”

발목을 잠기던 물이 금방 무릎까지 차올랐다.

오던 길에 실없이 던졌던 말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차는 물속에 잠겨도 몸은 빠져나가야지!”

어둠속에서 보니 급물살이 곤두서서 밀려오는 느낌이다.

“야! 일단 튀고 보자!”

차 위치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야산까지는 약 십 미터. 그 와중에서도 지갑과 휴대폰이 들어있는 배낭을 꺼내 둘러매고 모래둔덕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피해요! 빨리 피해!!”

상도와 난 허겁지겁 급물살을 헤치며 뒤뚱뒤뚱 비칠비칠 간신히 야산 쪽으로 도망쳤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헌데 라도가 보이지 않는다.

“통장이 안 보여!”

내가 소리치자 야산 쪽에서 라도의 고함이 들려온다.

“나 여깄어! 여기!”

다행이다. 시골 함평에서 자라 일찍 단신홀몸으로 상경해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역시 실전에 강했다.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되는 야산 끝자락에 발을 올려놓을 쯤에 물은 이미 가슴까지 넘실댔다. 강물은 너무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야산에 올라 숨돌릴 틈도 없이 뒤돌아보니 우리가 타고 온 스텔라 승용차는 물속에 잠겨 지붕밖에 보이지 않고, 모래둔덕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자리에서 어린애를 포함해 다섯 명이 희생됐다. 삼가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한발만 늦었더라도.. 절체절명 위험한 순간이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휴대폰은 물에 젖어 남의 휴대폰을 빌려 집에다 전화를 하려는데,(아침뉴스에 나오면 걱정할까봐..) 집전화번호. 와이프 전화. 딸 전화번호.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모양.

임진강 물난리. 재작년 9월 6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동네에선 살아돌아온 우릴 위로해준답시고 막걸리를 사면서 뭐..동내에 들어올 15억(보상금)을 놓쳤다느니 조(주)동아리를 까길래. 

난리가 일어난 지 며칠 후. 우린 연천군청을 찾아가 피해사실을 소상하게 밝히고 따졌다.

“대피경고 미작동 등등... 아무튼 이번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의 책임입니다.”

<수자원 임진강건설사업단>의 소재지까지 아주 친절하게? 일러준 군청직원의 도움으로 수자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군청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쳐 겨우겨우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으니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다. 은근히 불화가 났다.

“그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우리 세 사람, 일인당 일억만 주십시오.”

“네?”

“보도를 보니 희생자 일인당 5억을 주기로 했다는데”

“그건..”

“우리가 만약 그 자리에서 희생자 5인과 운명을 함께 했다면, 5억을 줘야 하는데 악착같이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1억이면 싸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일인당 4억, 3*4= 12억이나 득 인데!.”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당황해 하는 관계자를 보니 약간은 속이 풀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술로 끓는 속을 확 풀어버렸다.

어쩌면 아직도 주낚에 걸려있을 왕장어를 확인하러 가야 쓰갓는디..영 엄두가 안 나는구먼!! ^^

 

ㅎㅎㅎ ~ 

 

*** KBS 2TV 생방송 아침을 달린다 목요 초대석 1995년 6월 8일

   "판관 포청천"의 숨은 이야기꾼 중국어 번역가 이덕옥씨

 

 

 

 

 

 

 

 
홈페이지
http://www.kongja2010.co.kr/         검수   이 덕옥

 

공자 - 춘추전국시대 (Confucius, 2010)
요약
중국 | 액션, 드라마 | 2010.02.11 | 12세이상관람가 | 108분

           감독  호 메이

출연  주윤발주신진건빈육의   더보기

          줄거리

천하통일을 위한 열망으로 전쟁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왕 ‘노정공’은 당대 최고의 책략가 ‘공자’를 등용해 무너져가는 왕권의 부활을 노린다. 뛰어난 지략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수많은 전쟁과 내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노나라를 구하는 공자! 그러나, 혼란의 시대, 끝없는 전쟁 속 공자를 탐하는 많은 나라와 그를 시기하는 무리로 인해, 공자는 곤경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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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100자평

 



번역   이   덕 옥

  

 

 엽문(葉問)2 시놉시스

중일전쟁 기간(1940년대) 중에 엽문(견자단)은 권법의 대가로서 중국인들의 존엄을 살리기 위해 일본 황군과 맞서 결국 쫒기는 신세가 된다. 전쟁이 끝나자 엽문은 고향인 불산(佛山)에서 생활이 어려워 1949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옮겨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한다.

타향인 홍콩 땅이지만 다행히 신문사에서 주필로 있는 친구 양근(오가년)의 도움을 받아 천대무관(天台武館) 개설해 영춘권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황량(황효명)이란 청년이 서양권(권투)을 배운 사형들을 여러 명 데려와 엽문을 사부님을 모신다. 그로부터 엽문은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거둬들이게 된다.

혈기왕성한 황량은 사소한 감정으로 인해 홍권(洪拳)의 제자인 정위기(두우항)에게 도전을 하게 된다. 정위기는 패하자 승복하지 않고 부하들을 이끌고 황량을 어시장으로 납치한다. 이 사실을 안 엽문은 황량을 구하기 위해 어시장으로 달려간다. 이때 어시장의 실력자 황사부(홍금보)도 친구 비파(정칙사)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결국 두 사람은 맞닥뜨리고 홍사부는 엽문더러 향 한 자루가 타는 시간 내에 각 문파의 도전을 통과해야만 홍콩 무술계에서 발을 붙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엽문은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응한다. 그의 아내 장영성(능대림)은 내심 걱정이 되지만 남편의 뜻을 존중해 만류하지 않는다. 엽문은 다루(중국식 찻집)에서 <일주향(一柱香) 도전>을 받게 된다. 그는 각 문파의 고수들을 일일이 격파하고 마지막 관문에서 홍권의 대가인 홍사부가 직접 나선다.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 향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 홍사부는 엽문의 실력에 탄복해 결국 무관을 열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한다.

다음날 서양인 경사(경찰)가 홍사부를 찾아와 <서양권 권왕 쟁패전>을 주최해 줄 것을 종용한다. 그와 함께 온 용권풍은 서양권의 챔피언으로 근육질에 힘이 장사인데다가 안하무인으로 거만한 위인이다. 홍사부는 어쩔 수 없이 서양 경사의 청을 받아들인다.

한편 주광여(정가성)은 <일주향 무술시합>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 싣는다. 그는 홍권과 영춘권이 막상막하이기 때문에 홍사부가 엽문이 천대무관을 개설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했다. 양근은 주위 사람들의 압력에 굴복해 엽문더러 천대무관을 접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엽문은 홍콩에서 계속 영춘권을 전수하겠다고 고집한다. 공원에서 엽문과 제자들이 영춘권을 시연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다. 홍사부도 엽문의 결심에 존경을 표하며 <서양권왕 쟁패전>의 입장권을 주어 엽문과의 화해를 도모한다.

엽문은 주광요. 황량과 함께 서양권시합을 구경하러 간다. 비무대(比武台: 링)에서 용권풍이 실력을 발휘해 상대를 일일이 쓰러뜨리고 결국 권왕(拳王)의 타이틀을 차지한다. 정식 시합이 끝나자 정위기와 제자들이 흥을 돋기 위해 무대(링)에 올라 무술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용권풍은 중국 무술이 마치 어린애 장난 같다면서 무대 위로 올라 정위기 등을 멸시하며 희롱한다.

그에 화가 난 홍사부는 용권풍더러 당장 관중들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용권풍은 단호히 거절하고 오히려 홍사부에게 도전을 한다. 홍사부는 기꺼이 그의 도전을 받아들인다. 권왕은 시간이 흘러도 홍사부는 꺾지 못하자 광기가 발동한다. 홍사부는 차츰 수세에 몰리는데 동양무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굴복을 하지 않는다. 결국 용권풍의 악랄한 일격에 쓰러지고 만다. 주광요는 신문에다 경찰이 양인을 감싸고 동족을 멸시한다고 대서특필한다. 그 기사는 대중의 공분을 사게 되고 양인에 대한 항의가 빗발친다. 양인 경사는 민중들의 공분을 무마하기 위해 <화양권(華洋拳중국무술과 서양권) 시합>을 열겠다고 선포한다. 용권풍으로 하여금 그 시합에서 정식으로 중국무술을 꺾어버리라고 명한다. 기자회에서 엽문은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용권풍에게 도전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를 계기로 해서 홍콩에서 영춘권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고 제자들이 속속 몰려온다. 엽문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궁극적으로 영춘권은 홍콩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지까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56년 어느 날. 황량이 엽문의 무관으로 한 젊은이를 데려오는데 그가 바로 중국무술을 전 세계에 알려 국제적으로 명성이 혁혁한 이소룡이다.

 

영춘권

영춘권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청나라 말엽 남소림(南少林)에 몸담고 있던  五枚師太(여승)가 창시했다는 설이다. 오매사태가 하루는 하산하여 광동 불산진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두부장수를 만나게 된다. 마침 그의 아리따운 딸-영춘이 현지 건달들에게 희롱을 당해 상심하고 있던 터라, 오매는 자신의 무공 중에 여자가 배우기 적합한 것을 추려내 자위용으로 전수해 주었다. 영춘은 워낙 자질이 뛰어나 짧은 기한에 그 무술의 요점과 변화를 구사하는 오묘한 부분까지 파악해 새롭게 실용적인 권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그 권법을 바로 영춘권이다.

당시 영춘권은 여자들의 자기방어용으로 쓰였다. 그래서 다른 문파처럼 거칠고 강맹한 게 아니라 신법과 보법은 거의 이유제강(以柔制剛, 유중유강(柔中有剛), 여인들이 구사하기 유리하게 이뤄졌고. 동작 또한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라 복잡한 기교가 별로 없었다. 일종의 장중(莊重)하면서도 실용적인 권법이라 할 수가 있다. 그 후로 영춘이 양박구(梁博仇)에게 시집가 권법을 모두 남편에게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양박구는 영춘권을 황화보(黃華寶). 양이제(梁二娣)의 비술인 육점반곤법<六點半棍法>을 가미해. 곤봉이 영춘권을 익히는 사람들의 필수 병기 중에 하나가 되었다.

영춘권의 발상지인 불산, 불산지(佛山誌)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광서황제(1875~1908) 초년에 황화보 등은 영춘권을 양찬(梁贊?)에게 전수해준다. 양찬은 불산의 유명한 의원으로서 명성이 자자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했다. 양찬은 의술에 능하면서도 무예에 심취해 여러 무공을 익혔는데 그에 만족하지 않고 결국 영춘권을 다시 배우게 된다.

양찬은 영춘권이 법도. 용력. 신법 등에서 모두 상승(上乘: 최상급)무공임을 깨닫는다. 하여 열심히 탐구해 영춘권의  소념두(小念頭), 심교(尋橋), 표지(標指), 목인춘법(木人椿法), 육점반곤법. 팔참도법(八斬刀法) 등을 몸과 혼연일치가 되도록 거의 완벽하게 익혔다. 그리고 영춘권을 실전기술에 접목해 지역사회에서 권선징악 하는 데에도 응용해 중국 영남(嶺南)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영춘권왕>이란 영예도 얻는다. 그러나 무술보다 본업인 의학에 전념하느라 제자를 많이 거두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에게 진전을 전수받은 사람은 고작 자신의 두 아들 양춘, 양벽과 진화순(陳華順) 세 사람 뿐이다. 하여 영춘권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직접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어 더욱 희귀하게 여겨졌다.

진화순은 순덕(順德) 진촌(陳村) 사람인데 조상대대로 불산에서 살아왔다. 그는 양찬이 경영하는 의원에 자주 들려 인연을 맺어 영춘권을 배우게 됐다. 양찬이 사후 영춘권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 진화순은 아예 무관을 열어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영춘권은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쌓아야 할 뿐 아니라. 제자에게 직접 일일이 전수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문하생을 많이 받을 수 없고, 배우는 학비도 비싸 당시 주로 부잣집 공자만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영춘권을 <귀공자권>이라고도 한다. 그런 까닭에 진화순이 36년 동안 영춘권을 가르쳤는데 제자는 고작 16명밖에 안 된다. 그중에는 오중소(吳仲素). 하한려(何漢侶). 뇌여제(雷汝濟). 자신의 아들 진여금(陳汝錦). 그리고 훗날 영춘권을 널리 계승발전시킨 마지막 제자 엽문이 있다.

엽문은 일곱 살 때 입문하여 당시 노년에 접어든 진화순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해 많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순이 사후 대사형인 오중소도 엽문을 각별이 아껴 열심히 가르치고 도와주었다. 엽문은 배운 지 3년 만에 모든 진전(眞傳)을 전수받았다. 그는 16 세 때 학업 때문에 홍콩으로 건너가는데 거기서 사숙이 되는 양벽(양찬의 아들)을 만나 다시 3년간 진수를 전수받는다. 당연히 결과가 일취월장! 나중에 엽문이 다시 불산으로 돌아가 무술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쓰자, 영춘권은 또다시 명성이 커진다. 헌데 마침 일본군의 침략이 닥치고 엽문은 그들과 맞서다가 결국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어 영춘권은 한때나마 정체기를 맞게 된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 엽문은 다시 홍콩으로 건너가 친구 이민의 도움으로 구룡(九龍)에다 무관을 열어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엽문은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양의 과학 지식, 철학을 권법에 응용해 영춘권을 보다 체계화 시켰다. 공격라인. 그 각도. 그리고 힘의 안배 및 심리적인 이해 등등을 권법에다 융화시켰다. 그는 곧이곧대로 권법의 일초일식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의 자질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 가르치고, 하나를 배워 열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도 병행하여 학습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엽문의 독특한 지도 방법에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또한 실전을 통해 권법의 요점을 이해시켜 영춘권이 널리 알려지게 하는 데 공헌했다. 결과적으로 영춘권이 동남아를 비롯해 전세계에 알려져 그중에 이소룡같은 세계적인 스타도 키워냈다. 하여 세인들은 엽문을 영춘권의 일대종사라 하는데 이의가 없다.

영춘권은 여인들의 자신을 방어하는 무술에서 시작되어 실전 무술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그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작은 마을 불산에서 발상하여 전세계로 번져나갔고 중국무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엽문2줄거리와 영춘권.hwp

 

 
엽문 2 (2010) 네티즌별점9
Ip Man 2,葉問 2
홍콩 | 액션,무협,드라마  | 감독 : 엽위신  | 배우 : 견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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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분방하고 때론 엉뚱할 정도로 기발한 생각을 가진 4십대의 발명가 진분(갈우)은 가위 바위 보를 정확히 판명할 수 있는 <분쟁해결기>를 만들어 시대를 앞서가는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떠벌여. 괴짜 투자가에게 그걸 팔아 거금을 손에 쥔다.

 인터넷에다 생뚱맞은 구혼광고를 낸 진분은 연락을 바란다면서 마지막에 비성물요(성의가 없으면 훼방놓지 마라. 즉 장난 전화는 사절)이라고 토를 단다.

 광고가 나가자 게이로 변신한 옛친구. 공원묘지 영업사원 등 다양한 부류와 맞선을 보다가 어느 날 빼어난 미모의 스튜어디스-소소(서기)와 마주하게 된다.

 소소는 유부남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진분은 과거의 여인이 자살해서 그 죄책감에 술까지 끊었는데. 두 사람은 다신 안 만날 거란 전제하에 자신들의 아픔과 고민을 털어놓고 홀가분하게 헤어진다.

 그 후로 진분은 건망증이 워낙 심해서 어제 일조차 기억 못하는 무속인. 얼굴이 예쁘장하지만 1년에 관계를 한번만 원하는 섹스기피증 미망인 등을 만나 웃지 못할 촌극이 계속 이어진다.

 진분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항주(杭州)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인 소소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비행기에 동승한 소소의 애인(유부남)과도 마주친다.

 항주에서 진분은 부동산 소개업자. 임신한 미모의 대만 여자와 맞선을 보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소소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진분은 소소가 애인인 유부남에 대한 사랑을 못내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돌아선다.

 그런데 북경으로 돌아온 소소는 진분에서 뜻밖의 제의를 한다. 마음속에 한 남자를 품고 살도록 허락한다면 진분과 결혼까지 할 수 있다고.

 진분을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난다.

 진분의 친구-우상의 안내로 홋카이도 명소를 돌아다니며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소소는 옛애인을 처음 만나 홋카이도에서 그와의 모든 추억을 지워버리려 애쓰지만 지난 아픈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진분에게 유서를 남긴 채 자살을 결심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다행히 고깃배에 구조된 소소는 변함없이 자신을 아껴주는 진분의 진심을 깨닫고 둘이 함께 그 소중한 인연을 이어나가기로 한다.

요약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중국 | 125 분 | 개봉 2010-07-15 |
제작/배급
마운틴 픽쳐스(배급), ㈜씨네라인 코리아(수입)
감독
펑샤오강
출연
서기, 게유, 호가, 비비안 수, 방중신  출연 더보기
 
 
          
 
 
엽문2줄거리와 영춘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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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총동창회 !

졸업40여 星霜.

모교교정에서 ....

 

 

 설악산에 올라

 아침고요 수목원, 봄 나드리

雪岳山 의상대

 설악공원에서

 

99년 동창 송년회... 그때만 해도 좀 젊었는데..

사진 속에 세 사람이 이미 먼곳으로 떠났습니다.. 唐立德. 王啓利. 張承先... 명복을 빕니다.

남이섬에서

 

전라도 고창 선운사에 놀러가서..

 

계룡산

爭先恐后

各有所好

中國 沿台             (앞줄 꼬마是 다람쥐!!*劉世蒙的寶貝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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